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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복원

joyhome 2008. 2. 14. 22:20

[만물상] 숭례문 복원

 

입력 : 2008.02.13.

 

아테네 파르테논신전은 26년째 복원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2500년을 지나오면서 전란과 재해, 이교도들에게 손상됐고 이제는 산성비에 대리석이 녹아 내리기 때문이다. 대리석을 해체해 밖으로 옮겨 내고 일련 번호를 써넣고 원래 위치를 꼼꼼히 기록한다. 돌이 없어진 부분은 새 대리석을 깎아 배치한다. 잔해를 포함한 대리석 5만개를 일일이 정리해 다시 짜맞추려면 몇 십 년이 더 걸릴지 모를 일이다.

▶1949년 일본의 1400년 고찰(古刹) 호류지(法隆寺)의 금당(金堂)에 불이 나 국보 12면 벽화가 소실됐다.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렸다는 벽화를 베끼던 연구원이 전기담요를 끄지 않아 불을 냈다. 이듬해엔 역시 국보인 목조 긴카쿠지(金閣寺)가 전소됐다. 실연당한 21세 사미승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해서 사회에 복수하고 싶어서" 지른 불이었다. 온 일본이 충격에 빠졌다.

▶두 국보는 1955년 복원됐다. 처음 2~3년은 철저한 조사 연구를 거쳐 복원 방법을 토론하는 데 보냈다.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확실한 그림이 그려지고서야 착수했다. 옛 축조 때 썼던 연장까지 재현해 사용할 만큼 고증에 충실했다. 이를테면 끝부분이 큰 숟가락처럼 생긴 창(槍) 모양 '야리간나'를 만들어 벽을 파내는 데 썼다. 타 버린 금당 벽화는 수장고에 보관했다가 1년에 한 번 공개한다.

▶숭례문이 잿더미가 되자마자 문화재청은 "2~3년이면 원형대로 복원할 수 있다"고 큰소리부터 쳤다. 마치 '금방 다시 지으면 되지 무슨 걱정이냐'는 얘기처럼 들린다. 지금 국민은 숭례문에 쳐 놓은 가림막을 걷어내 모두가 참혹한 숯덩이들을 보며 참회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숭례문의 600년 혼(魂)은 죽고 말았는데 복원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성금을 모아 복원하자는 얘기도 생뚱맞다. 1992년 영국 왕실 윈저성에 큰 불이 나 5년 복원작업에 600억원이 들었다. 공식 소유주인 정부가 복원 비용을 책임져야 했지만 왕실이 자청해 전액을 댔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버킹엄궁까지 처음 일반에 개방해 입장료를 받았다. 왕실을 위해 세금이 쓰이는 것을 국민이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숭례문 복원은 다짜고짜 서두를 일이 아니다. 일대를 어떻게 되살려 꾸밀 것인지 충분한 국가적 토론이 필요하다. 잔해도 보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