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신문 기사들

잇단 화재… 광화문 해태 치운 탓 ?

joyhome 2008. 2. 23. 22:00
잇단 화재… 광화문 해태 치운 탓 ?
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되자 세간에는 광화문 복원을 위해 그 앞 해태상을 다른 곳으로 치워놓는 바람에 화재가 났다는 풍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런 풍문은 지난 21일 광화문 정부중앙청사마저 화마를 만나자 더욱 힘을 얻었다. 광화문 발굴조사를 맡고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측은 “요즘 해태상의 행방을 묻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상상의 동물인 해태가 정말로 화기(火氣) 진압과 관계 있을까? 해태는 원래 이름이 ‘해치’다. 그 태생지는 고대 중국이며 등장한 시기는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자료만을 토대로 한다 해도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해치는 고고학 발굴조사 결과 후한시대 유적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해 서울역사박물관이 개최한 ‘중국 국보전’에도 중국 간쑤(甘肅)성 주취안(酒泉)시 18호 고분 출토 후한시대 청동 해치상(간쑤성박물관 소장)이 선보이기도 했다.

이런 특성으로 말미암아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해태상은 법률을 관장하는 정부 부서나 그 관리를 상징하는 장식물로 자주 애용된다. 조선시대 감사원에 해당하는 사헌부 앞에는 해태상이 안치됐고 그 장관인 대사헌은 관복 흉배에 해태를 장식했다.

그렇지만 이런 해태가 화기를 제압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그 흔적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 같은 맥락에서 광화문 앞에 해태상을 세운 이유가 이와 관련된다는 기록도 없다. 단지 1864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이세욱이라는 뛰어난 석공에게 해태상을 만들도록 했다는 기록 정도만 나온다.

그럼에도 해태가 화기를 막아준다는 통설이 광범위하게 유포된 까닭은 풍수학 혹은 민속학에 종사하는 전문연구자들이 그렇게 주장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광화문 해태상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이 청사 앞으로 옮겨지는 등의 곡절을 거쳐 3공화국 때 광화문 앞으로 복귀했다.

김영번기자
[문화일보   2008-02-23 09: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