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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시승기 ② 디자인

joyhome 2008. 1. 30. 13:37

제네시스 시승기 ② 디자인

명차의 도전보다는 평범(?)을 추구한 디자인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일류가 될 수 없다. 열심히 땀을 흘려 개발하면 2류의 선두를 지키기도 어렵다.’
기자가 존경하는 현대차 경영진 가운데 한 분이 철학처럼 늘 하시는 말씀이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90년대 3류에서 이제 2류 선두까지 추격한 현대차가 1류(벤츠ㆍBMWㆍ아우디ㆍ렉서스ㆍ혼다 등)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피를 흘릴 자세로 일을 하고 연구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중국 메이커들은 2류의 하류 단계에 들어와 2류 선두로 올라서기 위해 피를 흘리고 있다. 이 점을 분명히 하고 디자인에 대해서 논한다.

제네시스에서 기자가 가장 불만인 점은 디자인이다. 디자인이 좋고 나쁘다는 판단에서가 아니다. 현대차 디자이너들이 혼을 쏟은 제네시스의 디자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건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할듯 싶다. 적어도 제네시스의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제네시스의 외관 디자인은 럭셔리카에 대한 도전보다는 많이 팔기 위한 보수적인, 아니 안전 위주의 디자인을 추구했다. 적어도 렉서스가 1989년 LS를 내놓을 때 벤츠와 BMW를 분석해 조금이라도 새로운 시도를 했던 것과 비교하면 말이다.

제네시스 디자인 프로젝트 팀에선 스포츠 세단으로서 현대차만의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시도했다. 문제는 경영진의 품평회에서다. “경쟁 차종인 렉서스 ES보다 뒷좌석이 넓어야 한다. 트렁크도 더 커야 한다. 앞뒤 모습은 BMW처럼 스포티한 느낌이 나야 한다…” 이런 숱한 교정 주문이 쏟아졌다. 결국 디자이너들이 시도한 현대차만의 혼은 사라졌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차로 소비자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특히 2002년 이후 현대차의 디자인이 그렇다. 첫 싼타페에서 보였던 파격이나 도전은 요즘 찾아보기 어렵다).

컨셉트카에서 보였던 다이내믹과 스포티는 빛을 잃었다. 어차피 제네시스는 수입차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국내용이라는 탄식과 함께 디자이너의 광채가 사라진 셈이다. 뒷좌석을 넓히기 위해 경쟁차인 렉서스 ES350, BMW 530의 카울 포인트를 고정한 상태에서 디자이너들의 자유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금 등장한 제네시스의 디자인은 훌륭하다. 특히 균형잡힌 조화로운 디자인이라는 평가에선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균형이라는 점에서 BMW의 디자인을 보면 럭셔리카 브랜드 유지를 위해 돈을 쓴 디자인 포인트가 여럿 보인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요즘 현대차 디자인이 세계 수준에 다가왔다’라고 평가하는 것에 딱 맞는 디자인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럭셔리카에 도전하는 현대차의 메시지, 즉 무언가 고객에게 전달하려는 현대차만의 아이덴티티는 찾아보기 어렵다.

보닛과 핸들 중앙에 등장한 독수리 날개 형태의 제네시스 엠블럼은 무엇인가(미국 수출차에는 이 엠블렘이 없다). 국내 소비자가 ‘아 내가 명차를 타는구나’ 하는 착각에 빠지는 것을 기대하는 걸까. 적어도 이번 만큼은 디자인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세계적으로 유행인 에어로 다이내믹 유선형은 접어두고라고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전후좌우 이미지가 그렇다. ‘직선의 아름다움’을 내세우는 요즘 기아차와는 완연히 다르다. 새로운 파격으로 승부하기에는 아직까지 현대차의 실력이 더 필요하다는 경영진의 판단에서일까. 전체적으로 균형을 중시하는 렉서스와 비슷하다. 렉서스 GS(측면)에 BMW 530(앞뒤)의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 경영진의 최종 디자인 품평회에서도 일부 파격적인 디자인을 대부분 보편성으로 다듬었다고 한다.

렉서스가 2003년 ‘L-피네스’라는 새로운 디자인 컨셉트를 발표했을 때만 해도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알기 어려웠다. GS가 등장하면서 렉서스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과감하게 뒷좌석 공간을 줄이고 벨트라인(윈도우라인)을 높이면서 스포티와 균형이라는 컨셉트로 다가왔다. 항상 뒷좌석과 트렁크 크기, 동종 차종 대비 에어백 수가 가장 많다. 이런 식의 수치적인 물량 공세로 차를 팔았던 점에 비해 새로운 변신을 한 것이다.

제네시스의 헤드램프의 깊은 선도 요즘 유행하는 추세다. 범퍼를 중심으로 위에 라디에이터 그릴, 아래에 공기를 흡입하는 큰 선을 디자인해 스포츠 세단 풍으로 변신을 도모했다. 측면은 다이내믹한 주행감각을 느끼게 하기 위해 짧은 전후륜 오버항(overhang: 바퀴와 범퍼사이의 거리)을 추구했다. BMW의 강렬한 드라이빙 이미지는 이런 짧은 오버항에서 나온다. 현대차의 첫 스포츠 세단이라는 도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후면 듀얼 머플러 역시 2004년 이후 고급차에 적용되는 디자인 추세다. 명차를 벤치마킹한 것에 틀림없지만 현대차의 아이덴티의 실종이라는 과제는 다음 새 차로 넘어간 셈이다.

편의장치는 세계 명차 수준



편의장치는 유럽 명차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오히려 일본 자동차처럼 별로 사용하지 않는 기능을 잔뜩 설계한 과잉 설계에 가깝다.

레이더 센서로 앞차와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정속주행이 가능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 코너를 돌 때 전동 모터로 램프의 위치를 진행방향으로 제어해 사각(死角) 지대를 없애주는 어댑티브 헤드램프(AFLS), 연비 등 각종 정보를 알려주는 운전자 통합정보 시스템(DIS) 등은 그동안 국산차에 없던 새로운 편의장치다. 오디오 역시 명차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했다. 렉서스 일부 기종에 사용됐고 롤스로이스에 달려 유명세를 탔던 하만베커 사의 렉시콘(Lexicon) 사운드 시스템을 적용했다. 재즈나 클래식을 들어보면 확실한 차이가 난다.

후진 기어를 넣으면 카메라를 통해 후방 모습이 내부 모니터로 전해진다. D레인지로 변경하면 모니터에는 두 개로 나뉘어 2분할 된 전방 광경이 들어온다. 인피니티에서 재미를 본 전방 카메라다. 그렇다면 현대차가 이번에 선보인 신기술은 진짜 신기술일까. 이 점에 대해선 철저히 국산차 첫 신기술이라고 하는 게 맞는 답이다. 이미 세계적인 메이커들이 2002년 이후 모두 상용화한 것들을 잔뜩 달았다. 그래서 수입차에는 흔하게 적용되는 신기술인 셈이다. 레이더를 이용하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은 이미 2001년 벤츠가 상용화했고 기자도 2003년 일본서 이 장비를 단 차량(렉서스와 혼다 인스파이어(미국형 어코드)을 시승했었다. 제네시스에 달린 장비가 요즘 잘 팔리는 수입차의 보편적인 기능이나 옵션인 셈이다. 그렇다면 현대차의 선행 기술은 어디쯤일까. 럭셔리카에는 적어도 선행 기술 하나 정도는 달고 나와야 한다. 앞으로 현대차 연구개발 센터에 거는 기대가 큰 것도 그런 점이다.

명차 수준 마무리가 돋보이는 실내




현대차가 자신있어 하는 분야가 바로 인테리어다. 실내 디자인만큼은 동급의 유럽 업체에 비해 나으면 나았지 떨어지지 않는다. 마무리 소재의 재질이나 완성도 역시 세계 수준급이다. 현대차만한 가격대에서 그만한 마무리 수준과 재질을 찾아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가죽이 덧대인 두툼한 핸들이나 부드럽지만 묵직하게 열고 닫히는 운전석 도어 등 최선을 다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운전석에 앉으면 ‘아 내가 좋은 차에 타고 있구나’하는 편안한 느낌이 든다. 렉서스에서 추구하는 편안함 속에 나만의 공간이라는 감동이 제네시스에서도 보인다.

운전석 도어 안쪽에서부터 조수석 도어 안쪽까지 병풍을 두른 듯 가죽 트림으로 감았다. 이 역시 유럽 명차에서 흔히 보는 디자인이다.

기어박스 하단에는 내비게이션, AV, DVD등의 멀티미디어 기능과 차량의 주행 정보를 알게 해주는 통합정보 시스템이 달려 있다. 2001년 BMW에서 시작해 이젠 아우디ㆍ벤츠에 이르기까지 모두 채용한 조그셔틀 형태의 종합 정보 단말기다. 메뉴를 이동하기 위해 조그셔틀을 돌리면 ‘퉁,퉁’하는 단차가 전해진다. 처음 시도라 그런지 조금은 강한 느낌이다. 뒷좌석 역시 공조ㆍ오디오 등 모든 기능을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이 달려 있다.

가속력이나 실내 정숙석은 수입차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감성 품질이라는 점에선 대단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단지 뒷좌석에 탓을 때 노면 소음이 조금 특이하게 들려온다. 이 점에 대해선 조금 더 테스트 드라이브를 해봐야 겠다.

마지막으로 오너용으로 제네시스를 구입한다면 꼭 코너링의 재미를 느껴보시길. 서스펜션이 물러 휘청했던 기존 현대차와는 너무 다른 ‘FEEL’을 만끽할 수 있을 듯 하다. 김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