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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갔던 꽃이 결혼식장 축하화환으로 ''둔갑''

joyhome 2008. 3. 8. 09:25
장례식 갔던 꽃이 결혼식장 축하화환으로 ''둔갑''


[토요추적] 죽은 자는 떠나도 ''화환''은 다시 태어난다 일부 꽃집들, 15만원짜리 2만원에 사서 되팔아 1개당 ''7만원 추가 폭리''… 재활용률 60% 추산

7일 오전 9시쯤 서울시 강남구 A병원 장례식장. 별관 지하 1층 1호실에서 막 발인이 끝나자 인부 3명이 바삐 움직였다. 이들은 영안실 복도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근조(謹弔)' 화환 10여개를 하나씩 장례식장 밖으로 끌어내 짐칸을 천으로 둘러싼 1t 트럭에 연방 실었다. 화환업계에서 '호로(일본말로 '덮개'라는 뜻)차'로 불리는 트럭이다.

약 2m 높이 3단짜리 화환은 차 천장과 높이가 꼭 맞았다. "어디로 가져가는 거냐"고 묻자 "근처 하우스(꽃 판매상)로 간다"고 말했다. 차를 타고 이들을 몰래 쫓았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서울 양재동과 경기도 과천 경계에 있는 비닐하우스촌. 널찍한 비닐하우스 안에는 또 다른 장례식장에서 거둬온 것으로 보이는 화환이 수십여 개 늘어서 있었다.

하우스 안에선 직원 2명이 '근조' 리본을 떼어낸 뒤 시들거나 꽃잎이 많이 빠진 꽃을 화환에서 뽑아내고 있었다. 그러고는 옆 통에 담긴 싱싱한 국화 몇 송이를 빼낸 꽃 자리에 꼽았다. 이런 식으로 새 화환이 하나 탄생하는 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경기 김포 B병원에서 부친상을 치렀던 이모(32)씨는 발인 전날 꽃집 직원이 찾아와 "어차피 치우기 번거로울 텐데 화환 하나당 1만원씩 쳐드릴 테니 넘겨 달라"고 해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화훼업계의 유통질서 정상화를 주장하며 화훼업자들이 조직한 '한국절화(折花)협의회' 조일환 사무국장은 "일부 대형 병원은 좀 다르지만 중소형 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이 같은 재활용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화 재활용은 장례식장의 개입 또는 묵인 하에 이뤄진다는 것이다.

성모병원 장례식장 관계자는 "병원 장례식장 가운데 조화 파쇄기를 갖춘 곳은 전국에서 S병원과 S대병원 두 곳뿐"이라고 말했다. 파쇄기가 없는 곳은 모두 외주업체에 맡겨 버리거나, 인부를 시켜 꽃을 떼낸 뒤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야 한다. 당연히 비용이 든다. 따라서 대형 병원 장례식장 몇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 장례식장들이 조화 재활용업자에게 넘겨 돈을 버는 쪽을 선택한다고 한다.

화환 유통업자들은 꽃 재배업자들로부터 화환 하나를 보통 8만~9만원선에 구입한다. 그것을 10만~15만원 받고 조문객에게 판다. 유통업자들이 중소 장례식장에서 화환을 넘겨받는 가격은 1만~2만원. 이것을 재활용해 다시 조문객에게 10만~15만원에 파는 것이다. 유통업자들이 재활용 과정에서 꽃을 몇 송이 더 사용하는 걸 감안해도 최소 7만~8만원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장례식장 화환 뒤처리가 큰 이권 사업이 되기도 한다.

연간 꽃 시장 규모는 1조원 안팎. 한국절화협의회는 화환의 60% 정도가 재활용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화환이 재활용되는 과정에서 장례식장에서 나온 화환에 쓰인 꽃의 일부가 결혼식장 축하화환에 쓰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서울 양재동 화훼공판장 관계자는 "이른바 '재탕집'에서 화환을 해체해 새 화환을 만들면서 조화에 쓰인 꽃 몇 송이가 경축화환에 쓰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7일 오전 경기도 과천 근처의 하우스 안에는 조화화환뿐 아니라 축하화환들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은 다 사용한 화환은 파쇄기에 넣어 폐기처분하고, 받침대는 재활용한다고 병원측은 설명했다. 적게는 하루 200여개, 많을 때는 1000여개까지 처분한다는 것이다. 서울 아산병원도 절화협의회와 계약을 맺어 꽃은 분리수거해 쓰레기장으로 보내고, 받침대는 재활용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상주들이 협조할 경우에 한할 뿐, 상주가 한사코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한 뒤 업자들에게 파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대형종합병원이라고 다 이런 식으로 투명하게 운영하진 않는다. 서울 K병원에서 외조부 상을 치렀던 임모(32)씨는 꽃집 주인 전화를 받곤 가족들끼리 상의, 화환을 넘기기로 했다. 그러나 병원측에서 제동을 걸어 그대로 두고 장지로 떠났다. 그런데 나중에 꽃집 차가 들어와 화환을 실어간 사실을 알게 되어 병원측에 항의했지만, 병원측이 "그런 적이 없다"고 발뺌하는 바람에 기분만 상한 채 돌아섰다.

농림수산식품부는 4~5년 전부터 분리형 화환 보급, 꽃 대신 경조쌀 주고받기 등 묘안을 짜내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절화협의회가 앞장서 재활용을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했지만, "재활용도 하나의 자원 절약"이라는 유권해석이 내려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예 재활용 화환을 상품으로 만들어 가격을 낮춰 팔아 양성화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소비자연맹 강정화 사무총장은 "근본적으로는 화환을 과시용으로 주고받는 문화가 문제"라며 "꽃 농가 생계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꽃 사용 문화를 적절하게 정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8-03-08 ] 

 

[이위재 기자  김재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