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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피신, 시민들에게 참 미안했다”

joyhome 2008. 11. 1. 10:47

“조계사 피신, 시민들에게 참 미안했다”

 

‘잠적’ 박원석 대책회의 실장 단독 인터뷰
새로운 출발 위해 농성 정리…촛불 계승할 것
꼭 삼겹살 먹고 싶었는데 혼자 먹기 쑥스러워

 

“촛불을 들었던 한 명의 시민으로서 정부의 독재와 독선을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잠적한 ‘촛불 수배자’ 박원석(사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을 지난 30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 교정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천막 농성 118일 만에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등 5명과 함께 경찰의 감시망을 뚫고 조계사를 나왔다. 박씨는 초췌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깔끔한 차림이었다.

박씨는 갑작스런 ‘피신’ 이유를 묻자 “촛불이 잦아들면서 조계사에 계속 머물지 말지를 두고 오래 고민해 왔다”고 털어놨다. 그는 “자진출두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부당한 탄압에 무릎을 꿇고 싶지 않았다”며 “그게 많은 국민이 함께했던 촛불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유모차 부대를 소환하고 학생들의 학교까지 찾아가는 상황에서, 자신들만 ‘안전한’ 조계사에 있는 게 “참 미안했다”고도 했다.

그는 조계사 농성을 정리한 것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애초 조계사에 들어온 목적 가운데 하나가 촛불 정신을 계승할 새로운 단체를 출범시키는 것”이라며 “최근 ‘민생·민주 국민회의’가 출범하면서 우리의 역할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고 설명했다.

삼엄한 경찰 경비망을 뚫고 조계사를 빠져나간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꺼렸다. 단지 “음력 초하룻날로 경내가 제법 붐비는 날이었다”며 “경찰이 두세 겹 막고 있어도 나가려는 의지가 있으면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조계사를 나오면 꼭 삼겹살을 먹고 싶었는데, “혼자 먹기 쑥스러워서” 그냥 감자탕을 먹었다고 한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서는 “잡힐 때 잡히더라도 언론 인터뷰나 기고, 인터넷 활동 등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할 것”이라며 “다른 수배자들과 함께 ‘제2의 촛불’과 관련된 여러 행사 가운데 하나를 택해 모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새로 출범한 국민회의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때와 달리 스스로 의제를 만들고 풀어야 하며, 국민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며 “국민회의가 빨리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힘을 싣고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현준 기자

 

잠적’ 박원석 대책회의 실장 일문일답


“조계사 총무원 의심은 헛다리 짚는 것”

“촛불을 들었던 한 시민으로서 정부의 독재와 독선을 거부하고 싶었다.”

30일 오전 서울 지역 한 대학에서 박원석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을 만났다.

박씨는 지난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농성에 들어간 지 118일만에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등 5명의 수배자와 함께 경찰의 감시망을 뚫고 잠적했다. 휴대폰을 끈 채로, 택시를 두 번

갈아타고 도착한 곳에 박씨가 밝은 얼굴로 나타났다. 초췌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깔끔한 차림이었다.

 

-어떻게 나갔나?
=오래 계획하고 구상했다. 경찰은 조계종 총무원 쪽을 주목하는데 모양인데,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수배자들끼리 고민해 실행했다. 그날 아침에야 결정했다.

갑작스레 나오느라 118일동안 보살펴준 총무원장 및 교계 관계자들께 인사도 못드리고 나와 정말

죄송하다. 어려운 시기에 지원해준 시민들께도 감사드린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다.

 

-자세하게 얘기해 줄 수 있나?
=곤란하다. 몇 년 뒤에나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근 경찰 경비가 강화됐는데?
=그렇다. 나오기까지 경계가 강화돼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오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두겹 세겹 경계도

뚫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광일씨가 나간 뒤 조계사 안마당까지 경찰이 들어왔다. 경찰이 우리를

가두는 강도가 쎄졌다. 그러나 올바른 것을 향한 우리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고 봤다.

 

-총무원은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좀 서운해 하던데?
=보안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총무원 쪽에 11월1일 범불교 대회 전까지 어떻게든 나갈

거라고 이미 말씀 드렸다.

 

-총무원 쪽을 의심하는 시각이 있다?
=헛다리 짚는 거다. 경찰이 자중해야 한다. 총무원 도움을 일부러라도 받지 않으려고 했다.

경찰이 스스로의 경계소홀 실책을 조계종 쪽으로 돌리려는 수작이다. 조사해봐야 나올 것도 없고,

오히려 스님들과 신도들에게 폐만 끼칠 뿐이다.

 

박씨는 관심이 쏠린 탈출 방법에 대해서는 “몇 년 뒤에나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입을 닫았다.

하지만 ‘왜 나왔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꽤 길게 설명했다. 자신의 도주 활동에 대해

“어떤 권력도 좋은 사회를 향한 자유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상징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그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며 언론 인터뷰, 기고 등 가리지 않고 열심히 활동할

것이라고 했다.

 

-왜 나왔나?
=안전하게 조계사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안에 있으면 활동에 제한이 있고, 무한정 있을 수도

없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순식간에 민주주의가 후퇴되고 민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난 촛불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새로운 전망을 준비하기 위해 조계사에 들어왔다.

그 일환으로 ‘민생민주 국민회의’를 최근 만들어 냈다.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방법도 있었을텐데?
=어떤 방식으로 이 싸움을 가져갈 것인지 고민했다. 조계사에서 기자회견하고 경찰에 자진출두하는

형식이 있을 수 있고, 실제 그런 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형식은 시민들의 기대와 어긋나고,

우리 스스로의 의지와 자존감에 비춰도 용납되지 않았다. 나가서 싸울 수 있는 데까지 싸우자고 의견을

모았다. 118일 넘는 농성의 의미를 잇기 위해 새로운 저항을 준비하고, 나가서 활동하다가 잡히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지난 행적을 봤을 때 떳떳하다고 생각했다.

이명박 정부의 강압적 통치에 대해 민주주의를 향한, 진실과 정의를 향한 국민의 의지를 막을 수 없다는

상징적 행동으로 봐달라.

 

-조계사 안과 밖이 다를 게 있나?
=조계사 농성은 어찌됐든 정적이다. 조계사 농성의 의미는 촛불이 한창일 때와 새로운 연대체인

국민회의가 구성된 지금이 엄연히 다르다.

지금은 조계사 안에서 촛불시민에게 상징성과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여기 계속 있다가는

우리 활동이 위축될 수 있겠다 싶었다. 구속·불구속에 연연했으면 조계사에 계속 있었을텐데 그렇지

않고, 말 그대로 촛불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독재와 독선을 거부하고 싶었다.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하겠다. 인터뷰가 됐든, 기고든, 직접 만나든, 모두가 싸움일 것이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으로 활동하겠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11월9일 노동자대회에 맞춰 나올 수 있다고 예고했는데?
=앞으로 여러 집회와 활동이 있다. 수배자들이 함께 그 자리에 나갈 수 있다.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직 없다.

 

-자신들의 역할을 너무 과대하게 보는 건 아닌가?
=과대하게 봤다면 조계사 안에서 계속 싸움을 했을 것이다.

우린 민생·민주 국민회의에서 역할도 맡지 않았다. 지금은 회의에 참석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광우병 대책회의 상황실장을 맡았던 한 간부로서, 또 촛불 집회에 참가했던 한 개인으로서

정부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싸움을 이어가려는 것이다.

 

-수배자들의 잠적으로 ‘민생·민주 국민회의’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분산된다는 우려도 있는데?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우리도 우려했다. 그러나 오히려 결집을 호소하고 싶다.

지금 상황은 광우병 대책회의 때와는 전혀 다르다. 당시는 목적이 굉장히 뚜렷했다.

그러나 국민회의는 포괄적이다. 스스로 의제를 만들어내고 풀어내야 하는데, 정당부터 일반시민

단체까지 포괄하고 있어 내부 의견을 통일하는 것부터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각 단체들이 자기 부분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아내고 지키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더 나아가 촛불을 통해 국민이 요구한 것이 무엇인지,

전체 운동의 과제로 시야를 넓혀야 된다. 국민회의가 조기에 촛불 운동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힘을 싣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겠다.

 

-가족들은 만났나?
=경찰이 다 붙었을텐데…. 어제 나와서 혼자 감자탕을 먹었다. 삼겹살을 먹고 싶었는데, 혼자 먹기가 좀

그렇더라.

 

최현준 기자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