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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예산, 보조금 등 1천억원 빼돌린 7백여명 적발 충격(10.10)

joyhome 2009. 10. 11. 17:18
교수님도 스님도 눈먼 돈 챙기기에 혈안

국가예산, 보조금 등 1천억원 빼돌린 7백여명 적발 충격
지위·직업 할 것 없이 다양한 계층서 나랏돈 ‘꿀꺽꿀꺽’

 

나랏돈을 제 돈인 양 물 쓰듯 쓴 700여 명이 덜미를 잡혔다. 공무원, 교수, 승려, 중소기업 대표 등 직책도 다양했다. 이들이 몰래 빼낸 나랏돈은 무려 1000억여 원. 국가예산이나 보조금, 공공기금 등 다양한 용도로 마련된 나랏돈은 ‘눈먼 돈’으로 둔갑해 이들의 주머니를 채웠다. 돈의 쓰임새도 다양했다. 카지노 도박 자금, 성형수술비용, 고급 외제차 등 호화생활에 쓰인 것. 이처럼 국민의 혈세가 엉뚱한 곳으로 새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명한 국가예산 관리의 필요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되는 국가예산이나 보조금 등과 관련된 비리는 그동안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이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김홍일 검사장)는 지난해 3월부터 ‘국가예산·보조금·공공기금 횡령 비리’를 단속했다.

그리고 지난달 28일, 대검찰청에 의해 드러난 단속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무려 696명이 나랏돈을 빼돌리다 적발됐다. 공무원, 교수, 군인, 복지시설 원장, 승려 등 다양한 직업과 직책을 가진 이들이 빼돌린 돈은 1000억여 원. 횡령한 돈은 카지노 도박자금, 자녀 교육비, 고급 외제 승용차 및 아파트 구입, 주식투자 자금, 성형수술비 등으로 쓰였다.

나랏돈은 ‘내 돈!’

이들이 횡령한 나랏돈 중 하나는 사회복지예산, 시설공사비, 군 양곡, 직원복지 자금 등 국가예산이다.

지난 2월 서울남부지검은 서울시에 장애수당을 과다 신청해 장애수당 26억5900만원을 가족 명의로 빼돌려 횡령한 구청 공무원을 구속했다. ○○구청 사회복지과 장애인 복지계정에 보관 중이었던 장애수당을 자신의 돈으로 탈바꿈한 것. 지난 3월 해남지청은 모 읍사무소에서 지방사회복지주사보로 근무하면서 생계주거급여비 11억여 원을 편취한 공무원을 구속했다.

시설 공사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동사무소 직원은 상수도 시설 공사비를 지급하는 것처럼 ‘입금 및 지급의뢰 명세서’를 위조해 6200만원을 횡령해 구속당하기도 했다.

두 번째 횡령 자금은 국가보조금 및 출연금이다. 일자리 창출이나 사회복지시설 건립, 문화재 보존 등을 위해 지급하는 국가보조금과 정부가 신기술을 개발하라고 국책연구기관에 출연한 기금 등이다. 적발된 이들의 90%가 이 같은 목적으로 조성된 기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횡령한 이들은 한국산업기술평가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환경기술진흥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등의 정부 출연금을 각종 신기술 개발 관련 허위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편취하는 등의 방식을 이용했으며, 업체 대표, 교수 등이 대거 적발됐다.

대전의 한 기업인은 차세대 핵심환경기술을 연구한다고 속여 한국환경기술진흥원으로부터 사업비로 9억1900만원을 지원받았고 서울의 한 에너지 기업 대표는 바이오 디젤 원료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한국산업기술평가원에서 지원받은 35억원 가운데 11억원을 횡령했다가 구속됐다.

직업 없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사회 일자리 창출 지원금도 횡령한 이들에게는 눈먼 돈일 뿐이었다. 지난해 4월 부산동부지청은 근로자 우편원격훈련 과정에서 근로자 1200명을 부정 수료시키고 훈련비로 고용보험기금 1억4000만원을 타간 국립대 교수 2명을 구속하고 훈련기관 대표 등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그런가 하면 탈북자를 고용하지 않았으면서 노동부에 탈북자를 고용했다고 속여 고용지원금 9억5500만원을 수급한 중소기업 대표도 덜미를 잡혔다.

종교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화재 관련 보조금 수십억원을 착복한 승려들이 적발돼 물의를 일으킨 것. 전남 화엄사의 전 주지 스님은 이미 완료된 공사를 새로 착공하는 것처럼 관련 서류를 꾸며 보수공사 등 명목으로 문화재 보조금 24억원을 타갔다.

정신지체자, 정신질환자,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조성된 사회복지시설 보조금을 횡령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원주에서는 정신지체장애인 수용시설을 운영하면서 원생들의 생활비와 시설 운영비 1억4800만원을 빼돌린 원장이 구속됐다. 또 지난해 4월 천안에서는 정신질환자 요양시설을 만들어놓고 1억1900만원을 빼돌린 원장도 쇠고랑을 찼다.

영세 사업자와 화물차주 등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류보조금도 새 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화물자동차 사업자등록증 등을 위조해 유류보조금신청서를 제출한 뒤 유가보조금 9000만원을 빼돌린 모 운수 대표이사가 그 대표적 실례다.

국가 정책자금 보조금도 예외 없이 새 나갔다. 모 제약업체 전 경영기획본부장은 치매치료제 실용화사업과 관련해 정부가 지원한 15억6000만원을 횡령했다가 구속됐다. 또 에너지절약시설인 가스엔진구동형 냉난방기를 설치한 것처럼 속여 에너지이용합리화자금 30억원을 편취한 브로커가 적발되기도 했다.

세 번째 횡령자금은 공공기금이다. 그중 하나는 신용보증기금. 지난해 8월 울산지방검찰청은 골프연습장을 증축하면서 공사비를 부풀린 가짜 계약서를 만들어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보증을 받아 농협에 10억원을 대출받은 대표이사를 구속했다.

원인은 허술한 심사제도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도 부정한 용도로 쓰였다. 지난 5월에는 ‘바지 대출자’를 내세워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의 보증을 받아 전세금으로 20억원을 대출받아 편취한 브로커 등이 덜미를 잡힌 바 있다.

이처럼 다양한 용도로 만들어진 나랏돈은 개인에게 돌아가 부적절한 용도로 쓰였다. 국민들의 혈세로 모인 돈이 눈먼 돈으로 둔갑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국가 보조금을 신청할 때 허술한 심사가 이뤄져 허위 서류를 제출하는 것이 용이한데다 사후에 확인하는 것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에서부터 교수, 공무원, 농민까지 나랏돈을 부당 수령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조차 없어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검찰 한 관계자는 “이번 비리 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범죄혐의를 낱낱이 규명하는 것은 물론 제도의 문제점 확인에도 주력해 법령 및 제도 개선에 반영하는 계기로 활용할 것”이라며 “국가 보조금의 집행절차의 투명성, 집행 후 사후 감독에 대한 절차 및 방법 등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국민의 혈세 낭비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요시사 신수현 기자│스포츠서울닷컴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