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신문 기사들

스마트폰.왜 휘어져야 하지?

joyhome 2013. 12. 28. 13:33

지금 쓰는 스마트폰 불편하지 않은데

왜 휘어져야 하지?

[허태균 교수의 '착각과 경영']

 

최근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휘어지는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 이제 휘어진 스마트폰도 가능하구나!' '세계 최초라며' 하는 광고를 보며 감동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한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근데 왜 휘어야 하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은 가로로 휘었고, LG전자의 스마트폰은 세로로 휘었다. 가로로 휘는 이유는 큰 스마트폰을 손으로 쥘 때 그립 감(잡는 느낌)을 좋게 하기 위해서이고, 세로로 휘는 이유는 통화할 때 얼굴에 더 밀착하는 느낌이 좋아서라고 광고한다.

 

근데 사실 그립 감을 위해서는 화면까지 휠 필요는 없다. 그냥 아이폰5처럼 손으로 잡는 뒷면만 약간 곡선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 중에 스마트폰이 얼굴에서 밀착되지 않아서 불편하거나 불만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역시나 휘어진 스마트폰은 신선함이나 놀라움 만큼의 가치는 없었나 보다. 기대보다 안 팔린다는 실적이 증명해 준다.

 

이렇게 굉장한 세계 최초의 상품인데 왜 안 팔릴까? 역설적이게도 바로 '왜 휘어야 하는데?'라는 질문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라는 간단한 질문은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들에게는 금기시되어 왔던 질문이다. 상명하복과 사회적 의무와 규범이 강조되는 수직적 집단주의 문화를 가진 한국 사회에서, 주어진 상황이나 명령, 사회적 규범과 행동에 대해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곧 거부이며 반항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흔히 군대에서 비 오는 날에 땅을 파라고 하면 그냥 파야 했다. 이유를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 직장에서 회식을 가자면, 폭탄주를 마시라면, 기획제안서를 특정한 형태로 만들라면, 그냥 아무 말 없이 따라야 한다. "왜요?"라고 물어보면, 그 질문을 했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는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뭔가를 하라거나 하지 말라고 하면 그냥 따라야 한다. "왜요?"라고 묻는 학생이 어떻게 됐는지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 청소년기에는 공부를 하고, 80%가 대학에 가고, 대부분이 취직을 하며, 폭탄주를 돌리고,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산다. 사춘기의 반항기를 지난 어른들은 "왜요?"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결국 모든 것을 그냥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의문을 가지지 않는 본질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에 빠져 살고 있다.

 

이런 한국인의 특성에 암울하고 빈곤했던 근현대사가 합쳐져서, 우리에게는 항상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왜 해야 하는데?"보다 중요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없었던 시절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든다면 그게 실제로 필요한 건지, 어디다 쓸 건지를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단지 만들 수 있느냐와 가질 수 있느냐만 중요했다.

 

이런 과거의 습관은 결국 지금에도 우리의 생각을 필요가 아닌 '기술', 창조가 아닌 '발전'에 묶어두고 있다.

왜 휘는 스마트폰이 필요한지와 사람들이 어떤 스마트폰을 원하는지가 아닌, 이제 과거에는 만들 수 없었던 휘는 스마트폰을 만드는 기술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 반가워서 그냥 만들기 시작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냥 만들어 보는 것도 아니고 그걸 팔겠다고 하고, 사람들이 안 사면 당황해한다. 그때야 물어본다. "이렇게 멋진 제품을 왜 안 사지?"

 

이런 비극은 융합 교육을 외치는 대학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대부분의 융합 교육은 인문사회계와 이공자연계 전공자의 협동 과제 형태로 진행된다. 이런 과제의 시작은 대부분 매력적이지만, 뜬구름 잡는 인문학의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구라'와 매우 놀라운 최신 기술에 대한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소개를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매우 뛰어난 인문학자의 구라는 이해하기 힘들다.

 

결국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신기한 기술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루게 되고, 어느새 질문은 '이 기술로 뭘 할 수 있지?'로 바뀌어 있다. 결국 대부분의 협동 과제 아이디어는 그 기술을 사용할 만한 것들로 자연스럽게 한정된다. 휘는 화면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 휘는 기술로 뭘 만들지를 고민하지, 왜 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게 된다.

 

빠른 추종자(fast follower)에서 선도자(first mover)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바로 "?"라는 질문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필요한 물건을 산다는 간단한 진리를 잊지 말자.

 

[Weekly BIZ] [허태균 교수의 '착각과 경영'] 지금 쓰는 스마트폰 불편하지 않은데왜 휘어져야 하지?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 2013/12/28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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