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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시장 떡볶이

joyhome 2014. 2. 15. 22:32

 

통인시장 떡볶이

경복궁 서쪽, 인왕산 동쪽 자락 옥인동·누상동·통인동에 요즘 부쩍 골목 여행자들이 찾아든다. 옛 서울 뒷골목에 꾸밈없이 밴 사람 사는 냄새를 맡는다. ·현대를 아우르는 토박이 삶의 흔적을 더듬는다. 골목엔 오래된 한옥·근대가옥·적산가옥이 밋밋한 연립주택과 섞여 있다. 곳곳에서 이상·윤동주·이중섭이 살았던 집터와 마주친다. 세월의 더께 앉은 책방·미장원·분식집과 아담한 카페·공방을 기웃거리며 걷는다.

 

인왕산 쪽 옥인동 골목 안에 박노수미술관이 있다. 박노수 화백이 작년에 세상을 뜨기까지 40년 살던 집이다. 그가 종로구에 내놓은 집과 작품, 고미술품으로 첫 구립 미술관이 생겼다. 77년 된 이층집 송판 마루를 딛고 다니며 화사한 작품들을 감상한다. 뜻밖에 누리는 호사다. 언제부턴가 이 동네를 서촌(西村)이라 부르지만 사실 서촌은 서소문 일대를 가리킨다. 지난해 종로구 지명위원회는 세종대왕이 태어난 동네라는 뜻을 살려 '세종마을'로 정했다.

 

시간을 거슬러 세종마을로 들어서는 입구가 통인시장이다. 번잡한 효자동 왕복 6차로 큰길에 이런 시장이 붙어 있다는 게 신기하다. 고만고만한 떡·부럼·과일·나물·반찬 가게와 국수·순대·만두 집 일흔다섯 개가 150m가량 늘어섰다. 점심 무렵 사람들이 빈 플라스틱 도시락을 들고 반찬가게마다 기웃거린다.

'도시락 카페'5000원쯤 내고 바꾼 엽전으로 반찬을 사 담아 '카페'에서 먹는 행렬이다. 젊은 커플, 넥타이 맨 직장인에 일본·중국인 관광객도 보인다.

 

또 하나 통인시장 명물이 '기름 떡볶이'.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가래떡을 고춧가루나 간장에 버무려뒀다 가마솥 뚜껑에 그때그때 기름 두르고 지져 낸다. 그리 맵지도 짜지도 않아 덤덤하더니 먹을수록 입맛을 끌어당긴다. 뉴욕 식당가에 새 바람을 일으킨 한인 요리사 후니 김이 반해 배워 갔다. 55년 된 할머니떡볶이 집에 그제 저녁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찾아왔다. 떡볶이가 다 팔린 뒤였다.

 

케리는 옆 가게에서 떡볶이를 맛보며 "베리 굿""생큐"를 거듭했다고 한다. 통인시장 떡볶이는 성 김 미국 대사가 마련해둔 일정 중 하나였다. 성 김은 열 살까지 성북동에 살아 할머니집 기름 떡볶이를 즐겨 먹는 단골이다. 케리는 케첩으로 이름난 식품 재벌 하인즈그룹 사위답게 떡볶이 먹기를 골랐다. 외국 도시에 가거든 시장에 가보라고들 한다. 그곳 사람들 삶을 오감으로 만날 수 있어서다. 케리 장관은 저잣거리 한국인과 살갑게 교감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던 셈이다.

 

입력 : 2014.02.15 07:32

오태진 | 수석논설위원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2/14/2014021404090.html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