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시장 떡볶이
경복궁 서쪽, 인왕산 동쪽 자락 옥인동·누상동·통인동에 요즘 부쩍 골목 여행자들이 찾아든다. 옛 서울 뒷골목에 꾸밈없이 밴 사람 사는 냄새를 맡는다. 근·현대를 아우르는 토박이 삶의 흔적을 더듬는다. 골목엔 오래된 한옥·근대가옥·적산가옥이 밋밋한 연립주택과 섞여 있다. 곳곳에서 이상·윤동주·이중섭이 살았던 집터와 마주친다. 세월의 더께 앉은 책방·미장원·분식집과 아담한 카페·공방을 기웃거리며 걷는다.
▶인왕산 쪽 옥인동 골목 안에 박노수미술관이 있다. 박노수 화백이 작년에 세상을 뜨기까지 40년 살던 집이다. 그가 종로구에 내놓은 집과 작품, 고미술품으로 첫 구립 미술관이 생겼다. 77년 된 이층집 송판 마루를 딛고 다니며 화사한 작품들을 감상한다. 뜻밖에 누리는 호사다. 언제부턴가 이 동네를 서촌(西村)이라 부르지만 사실 서촌은 서소문 일대를 가리킨다. 지난해 종로구 지명위원회는 세종대왕이 태어난 동네라는 뜻을 살려 '세종마을'로 정했다.
▶시간을 거슬러 세종마을로 들어서는 입구가 통인시장이다. 번잡한 효자동 왕복 6차로 큰길에 이런 시장이 붙어 있다는 게 신기하다. 고만고만한 떡·부럼·과일·나물·반찬 가게와 국수·순대·만두 집 일흔다섯 개가 150m가량 늘어섰다. 점심 무렵 사람들이 빈 플라스틱 도시락을 들고 반찬가게마다 기웃거린다.
'도시락 카페'에 5000원쯤 내고 바꾼 엽전으로 반찬을 사 담아 '카페'에서 먹는 행렬이다. 젊은 커플, 넥타이 맨 직장인에 일본·중국인 관광객도 보인다.
▶또 하나 통인시장 명물이 '기름 떡볶이'다.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가래떡을 고춧가루나 간장에 버무려뒀다 가마솥 뚜껑에 그때그때 기름 두르고 지져 낸다. 그리 맵지도 짜지도 않아 덤덤하더니 먹을수록 입맛을 끌어당긴다. 뉴욕 식당가에 새 바람을 일으킨 한인 요리사 후니 김이 반해 배워 갔다. 55년 된 할머니떡볶이 집에 그제 저녁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찾아왔다. 떡볶이가 다 팔린 뒤였다.
▶케리는 옆 가게에서 떡볶이를 맛보며 "베리 굿"과 "생큐"를 거듭했다고 한다. 통인시장 떡볶이는 성 김 미국 대사가 마련해둔 일정 중 하나였다. 성 김은 열 살까지 성북동에 살아 할머니집 기름 떡볶이를 즐겨 먹는 단골이다. 케리는 케첩으로 이름난 식품 재벌 하인즈그룹 사위답게 떡볶이 먹기를 골랐다. 외국 도시에 가거든 시장에 가보라고들 한다. 그곳 사람들 삶을 오감으로 만날 수 있어서다. 케리 장관은 저잣거리 한국인과 살갑게 교감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던 셈이다.
입력 : 2014.02.15 07:32
오태진 | 수석논설위원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2/14/2014021404090.html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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