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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joyhome 2017. 6. 1. 09:49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견우직녀도 이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

안개꽃 몇 송이 함께 묻고 돌아오네 / 살아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해주고 /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께 나눠주고 /

옥수수 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 은하건너 구름건너 한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도종환,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마흔 넘은 대한민국 사람으로 1986년에 출간된 도종환 시인의 시집과 시

접시꽃 당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시인은 애절한 사랑이라는 접시꽃의 꽃말답게 그 시집에서

아내와의 지순한 사랑을 노래했다.

그는 암에 걸려 시한부 생을 살아가는 아내를 간호하며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이 우수수빠져나가는 아내의 여위어 가는 몸을 보며 아려 오는 가슴을 노래했다.

 

그는 먹장구름처럼 시시각각 아내를 덮쳐 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했던

아내를 왜 데려가려느냐고 절규한다.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도 아내와 함께 베어 내야 하고, 남아 있는

 묵정밭도 아내와 함께 갈아엎어야 한다고 애원한다.

한때 그 시집은 전 국민의 심금을 울리며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접시꽃 당신이 아내가 죽기 전의 애틋한 사랑 노래라면, 위에서 인용한 시는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난 아내를 묻고 돌아온 뒤의 쓰라린 회한이 묻어 있는 노래이다.

그는 살아 평생 옷 한 벌 못해 주고마지막으로 베옷 한 벌해 입힌 아내에게

한없는 미안함을 느끼고 용서를 구한다. 이어 이제는 만나기 힘든 아내와 자신을

 1년에 겨우 한 번 만날 수 있는 견우직녀로 비유하며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토로한다.

 

 

도종환 시인은 1991년 재혼했다. 많은 독자들이 실망감을 표시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는 아내가 죽은 뒤 전교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투옥되었다.

그는 그 당시 재혼 배경에 대해 투옥된 뒤 아이들을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어쨌든 그가 재혼을 했다고 해서 시집

접시꽃 당신의 의미가 퇴색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작가와는 독자적으로 작품 자체로서

존재의의를 갖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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