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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앞 일산화탄소는 치사량"…

joyhome 2018. 12. 22. 15:04

 

연탄앞 일산화탄소는 치사량"침묵의 살인가스일상 30곳 측정해보니

[르포] " 입력 2018.12.22

박성우 기자 최지희 기자

 

무색·무미·무취침묵의 살인자

최근 5년간 가스사고 사망자(14) 모두 일산화탄소 중독

기름·가스 연료 태우는 곳 1000ppm 이상치사량 넘어

 

불 맛으로 입소문 난 서울 종로의 한 식당. 문을 열자, 주인보다 먼저 천장의 뿌연 연기가 손님을 맞는다. 일산화탄소(CO) 측정기 전원을 켜자, 계기판 숫자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해 12~14ppm을 알린다. 정상수치(20ppm) 보다 낮은 수준이다. 식당 주인은 "두 시간 마다 문을 열어 환기하고 대형 환기 팬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산화탄소는 색과 맛, 향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일산화탄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자각 없이 치명적인 상태에 이른다. 이 때문에 침묵의 살인가스라 불린다. 지난 18강릉 펜션사고로 의식을 잃은 학생이 깨어나면서 했던 첫 마디가 "어떻게 된 일이죠?"였다고 한다. 일상 주변에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마시고 있는 일산화탄소는 얼마나 될까?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서울 시내 30곳의 일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했다.

 

  

침묵의 살인가스일산화탄소일상공간 30여곳 측정해보니

일산화탄소를 측정한 곳은 식당 주방과 흡연실, 보일러실, 지하철역, 자동차 배기구 등이었다. 이날 대기 중의 일산화탄소 농도는 25ppm(1시간 기준) 이하였다. 불을 사용하거나 난방을 하는 등 화석연료를 태우는 장소에서는 일산화탄소 농도가 특히 높았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장어구이집. 올해 8월 충북 청주의 한 장어구이집에서 손님 11명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손님들은 중독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일산화탄소 흡입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식당 입구에서 숯에 불을 붙이는 직원들은 이중(二重)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숯을 달구는 기계 앞에 측정기를 갖다 대자 삐삐삐경고음이 울렸다. 측정기 화면에 뜬 숫자는 997ppm. 치사량 수준이다. 장시간 머무르는 장소가 아닌 것을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수치였다. 근처 연탄불고기집도 화덕 앞은 마찬가지로 위험했다. 고기 굽는 연탄불 앞의 일산화탄소 농도가 1000ppm을 넘어섰다. 놀란 종업원들이 주방으로 몰려들었다.

 

"연탄을 태우니 좋을 게 없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일산화탄소 농도가) 치사량까지 올라갈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에 한창 고기를 굽고 나면 머리가 띵했는데, 그저 피곤해서 그런 거로 생각했어요. 환기시설을 좀 더 갖춰야겠습니다." 식당 주인 이모(47)씨가 말했다.

 

손님이 식사하는 홀로 나오자 일산화탄소 농도는 정상 수치인 20ppm 아래로 떨어졌다. 손님보다는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이 고농도 일산화탄소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얘기다. 실제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고깃집 식탁 위는 농도가 3~6ppm이었지만, 주방 대형 가스레인지 앞에서는 180ppm을 넘어 섰다. 이 정도의 일산화탄소에 장시간 노출되면 피로감과 어지럼·두통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지난 19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식당 주방(180ppm), 담배흡연(141ppm), 보일러실(12ppm), 자동차 배기구( 75~104ppm)등 생활 공간 속에 노출된 일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해봤다. /박성우 기자

 

우리 집에도 일산화탄소가?

가정에서도 소량의 일산화탄소가 곳곳에서 검출됐다. 일상공간에서 가장 일산화탄소 수치가 높은 장소는 가스레인지였다. 가스레인지는 실내에서 불완전 연소가 많은 제품으로 꼽힌다. 가스레인지 푸른 불꽃 언저리 붉은색 기운이 불완전 연소를 뜻한다. 일산화탄소가 바로 이 부분에서 나오는 것이다.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린 뒤 점화다이얼을 돌리자 5분 만에 일산화탄소 수치가 57ppm까지 올라갔다. 인체에 해를 끼칠 정도는 아니지만, 환기하지 않은 채 장시간 노출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동시에 가스보일러도 틀었다. 연통이 제대로 맞물려 있고, 마감이 제대로 된 제품이었다. 일산화탄소농도는 12ppm이었다. 외부로 연결된 연통 앞도 43ppm 안팎이었다. 관리만 제대로 한다면 가스보일러가 위험한 물건은 아니라는 얘기다. 경찰 관계자는 "강릉 펜션의 가스보일러 시공·관리가 제대로 됐다면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상자가 10명 발생한 강릉 아라레이크 펜션에서는 보일러 연통이 어긋나 일산화탄소가 장시간 누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소방당국이 측정한 펜션 내부 일산화탄소 농도는 155ppm이었다. 전문가들은 "사고 시점의 농도는 이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혈중 일산화탄소 농도 치사량이 40%인데, 숨진 학생 3명의 체내에서 검출된 농도는 각각 48%, 55%, 63%로 치사량을 훌쩍 넘었다.

 

일상에서 무심결에 흡입하는 자동차 배기가스와 담배연기는 어떨까. 자동차 배기구 앞의 일산화탄소 농도는 104ppm이었다. 그러나 배기구는 차량 외부로 빠져 나온 것이라 보통의 경우라면 인체에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자동차 실내의 일산화탄소 농도는 8~12ppm이었다. 담배연기 앞에서도 측정기 버튼을 눌러놨다. 자동차 배기구보다 높은 141ppm이었다.

 

5년간 가스사고 사망자 전원 일산화탄소 중독

일산화탄소는 폐로 들어가면 산소보다 250배 더 빠르게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산소 보급을 가로막아 혈액량 감소 쇼크를 일으킨다. 심한 경우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산화탄소 농도가 200ppm을 넘어가면 두통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400ppm부터는 치사량으로 구분된다. 3시간 정도 노출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800ppm에서는 1시간 안에 숨질 만큼 위험하다. 1600ppm부터는 10분 안에 어지럼·구토 증세가 나타난다. 이 정도로 짙은 일산화탄소를 마시면 30분 만에 사망할 수 있다.

 

한국가스안전공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3~2017) 가스사고 건수는 23. 이 가운데 17(74%)이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다. 가스사고 사망자는 14명인데, 모두가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인명 피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지난 19일 경남 함안군에서는 텐트 안에서 부탄가스 온수매트를 켠 채 잠든 조모(44)씨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졌다. 조씨는 휴대용 부탄가스로 물을 데운 뒤 매트에 공급하는 온수매트를 켜놓고 잠이 들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0월에는 경남 창원시에서 캠핑카에서 잠을 자던 일가족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추운 날씨 탓에 캠핑차량 안에 숯불을 들여놓은 게 원인이었다.

 

전문가들은 좁은 공간에서 일산화탄소가 누출되면 농도가 급격히 올라가기 때문에 환기는 필수"라고 조언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산화탄소 중독 증상이 나타나면 환기를 시켜 최대한 많은 산소를 공급하는 게 급선무"라면서 "환기 후 환자의 다리를 들어 올려, 혈액이 머리와 상체로 쏠리게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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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22/20181222006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