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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론(運命論)

joyhome 2022. 12. 11. 22:08

운명론(運命論)

 

이 세상 만사가 미리 정해진 필연적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고 하는 사상.

 

숙명론이라고도 한다. 흔히 결정론과 혼동되는데 결정론이 인간의 의지적 행위를 다수의 자연적 원인으로 돌리려고 하는 이른바 심리학적 이론이라는 점에서 운명론과는 다르다.

그러나 과학 영역에서는 결정론의 특수한 형태에 운명론의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개인은 공동적 개인조차도 어떤 종류의 사회적 사상(事象)의 흐름에 대해 아무런 영향력도 미칠 수 없다고 하는 입장을 사회적 운명론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운명론의 특징은 오히려 이 세상의 모든 일에 논리적인 인과관계 같은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점에 있다.

 

예컨대 미개인이 자신이 미리 정해진 날에 죽도록 운명지어져, 사전에 어떠한 주의나 노력을 기울여도 이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운명이 어떤 전능의 힘을 가지고 인사(人事)의 일체를 지배한다는 사상은 인간의 역사 속에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일찍이 그리스의 호메로스는 모든 인간사(人間事)를 신의(神意)에 종속시키는 비인격적 힘의 존재를 믿고 그것을 모이라라고 불렀으며 또 헤시오도스는 운명을 주관하는 3명의 여신에 관해서 말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모이라라고 불리는 이 여신들 가운데 인간의 탄생을 주관하는 클로토는 생명의 실을 뽑아내고, 라케시스는 모든 인간들의 생애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며, 가장 연장(年長)인 아트로포스는 생명의 실을 끊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인의 일반적 신앙에 따르면 모든 인사관계는 운명을 주관하는 신들의 손 안에 있으며 운명이란 각자에게 주어진 이 세상에서의 ‘몫’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변경시킬 수도 또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운명관은 원시인의 신화나 전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 즉 운명의 힘이 어떤 초월적인 것으로서 의인화(擬人化)된 경우이다.

이것이 다소 관념화되고 한층 정리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중국의 천명설(天命說), 인도(불교)의 인과응보(因果應報) 사상, 이슬람교의 선구적 시인이며 예언자인 아슈아의 종말론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간은 모두 아담의 죄를 함께 하고 있다는 원죄관과 심판의 나팔이 울리면 이 세상은 파멸하여 신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종말론이 서로 결부되어 강한 운명론적 색채를 나타낸다.

운명에 관해서 철학적인 형태로 논술된 것으로는헤라클레이토스의 몇몇 단편(斷片)이 남아 있다. 또한 그리스 말기의 에피쿠로스파나 스토아파 철학자들이 운명에 관해서 꽤 활발한 논의를 한 듯한데 전자가 운명은 맹목의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을 역설한 데 비해, 후자는 오히려 만물은 어떤 절대적 이성의 법칙에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 운명의 필연성에 복종할 것을 권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중세 이후의 그리스도교 내부에서 형성된 사상으로서는 아우구스티누스 및 캘빈의 예정설(豫定說)을 들 수 있다. 이 사상은 사도 바울로의 서간에 그 원천을 두고 있어,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신이 미리 정했으며 신의 의지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와 같은 견해에 근거를 두고 의지의 자유는 제1의 인간, 즉 아담에게만 해당될 뿐, 그 이후의 인간들에게는 선(善)을 행할 자유가 아니라, 다만 악을 행할 자유(원죄)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의 말에 따르면 신앙조차도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의 은총이며 누구누구가 구제된다는 것은 이미, 그리고 영원히 예언되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豫定調和說)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세계를 형성하는 무한한 단자(單子:모나드)가 서로 독립적 존재를 유지하면서 서로가 단 하나의 우주를 비춤으로써 질서 있는 세계를 창조하는데, 이는 미리 이와 같은 조화적 질서를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역설하면서 이를 예정조화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근세 이후에는 특히 운명론적 사상이라고 할 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으나, 세계사의 형태학이라고 하는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서양 문명의 필연적 몰락을 예언한 슈펭글러의 이론 등은 운명론적 사상의 두드러진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 ‘영겁회귀(永劫回歸)’와 ‘운명애(運命愛)’를 역설한F.W.니체, 땅 위에 사는 인간의 운명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베르댜에프,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존재로 영원히 성취되어 있다고 하는K.발트 등에게서 운명의 문제에 관한 뛰어난 고찰을 엿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운명론[fatalism, 運命論]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