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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부 폐지론은 아날로그적 사고다

joyhome 2008. 1. 11. 16:31

정통부 폐지론은 아날로그적 사고다

전자신문|기사입력 2008-01-11 14:51
 
[쇼핑저널 버즈] 지난 2000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G8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일본의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당시 총리대신) 연단에서 ‘IT혁명(아이티 카쿠메이)'를 ‘잇 카쿠메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i모드(NTT DOCOMO의 휴대 인터넷 서비스)는 일반 전화와 달라서 전기가 없어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해 전 세계의 비웃음을 샀다. 정말 우스운 일이지만 당시의 일본 고위각료 대부분은 IT를 ‘잇'으로 발음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리 총리는 휴대전화는 전화기와 전화기가 직접 전파를 주고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는 서버에 접속해야 하고, 데이터를 주고 받기 위해서는 교환기(기지국)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모리 총리가 ‘아이티'라는 발음을 모르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총리가 그러한 것을 모르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정부에는 그 무지함을 바로 잡아줄 이도 없었다. 그런 정부 각료와 정치인들의 무지함이 오늘날 일본을 세계적인 ‘디지털소국(小國)'으로 만들었다.

며칠 전부터 나오고 있는 ‘정보통신부 폐지론'을 보고 있으면 개발도상국회의에서 일어났던 모리 총리의 ‘잇 발언 사건'이 떠오른다. 아날로그적 사고로 디지털 사회를 움직이고자 하면 그 결과는 일본 같은 디지털소국으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IT(Information Technology, 정보기술), 혹은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정보통신기술) 산업을 아주 쉽게 정의하자면 “정보를 생산, 관리, 운용하기 위한 모든 기술과 제반 장치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IT란 결국 정보를 다루는 기술이며, 그러한 정보는 모두 전기적 신호에 의해서 처리된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정보를 전기적 신호인 0과 1로 수치화 하는 것을 우리는 ‘디지털(Digital)'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디지털 신호는 모두 전기가 통하는 상태와 통하지 않는 상태를 0과 1로 정의해 처리하며, 장치와 장치가 이러한 신호를 오류 없이 전송하고, 모든 장치에서 저장된 신호를 똑같이 읽어내고, 처리하기 위해 이러한 전기적 신호를 정의하는 규약이 필요하다.

IT산업이란 이러한 규약을 정의하고, 그것을 표준화하며, 표준화된 규약에 따라 기계를 제어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그 플랫폼을 운용할 수 있는 장치(기계)를 만들며, 거기서 돌아가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인 것이다. 다시 말해 IT산업은 바로 디지털을 다루는 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IT 전반적인 흐름은 디지털적인 사고를 갖지 못하면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아날로그 세상에서만 살던 사람이 디지털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아날로그적 사고를 한다는 것이 죄악은 아니며, 부끄러운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디지털 사회를 아날로그적인 사고로 재단하려 한다면 그것은 죄악이 될 수도 있으며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앞으로 IT산업의 큰 축을 이룰 것으로 전망되는 IPTV를 예를 들어보자. IPTV의 주무부처는 어디일까? IPTV는 기본적으로 방송이다. 하지만 데이터는 인터넷 통신망을 통해 전송된다. 이 데이터들은 유선망을 통해 패킷으로 전송되기도 하지만 무선 통신망을 이용해 특정 주파수대를 이용해 전송되기도 한다. 그런데 T커머스를 이용해 쇼핑을 할 수 있으며, 리모컨으로 그 자리에서 결재도 된다. 대체 IPTV는 어느 부처 관할일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IPTV는 정보통신부 관할이다. 왜냐면 일련의 모든 과정을 디지털 신호로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원 소스라고 할 수 있는 아날로그 방송 프로그램들만 방송위를 거치면 된다. 지금까지 짜여져 있던 구도가 가장 합리적인 형태인 것이다.

지금은 산업 사회가 아닌 정보화 사회다. 패러다임은 이미 그렇게 바뀌었다. 정보화 사회에는 정보화 사회에 맞는 사고가 필요하다. 산업사회의 엘리트들이 미래 산업을 주도한 전통적 산업사회(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같은 나라들)의 디지털 산업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생각해보자. 정보화 사회에는 그에 걸맞은 전문가적 소견과 정책이 산업을 주도해야 한다. 아날로그적인 엘리트의식으로는 그것을 이끌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아날로그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TV가 ‘흑백 브라운관 → 컬러 브라운관 → 평면 브라운관 → PDP → LCD'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제품의 변화를 인식할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기계가 아닌 콘텐츠를 공급하는 방식의 변화와 플랫폼의 이동을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방송이라는 플랫폼이 허물어지면서 영상 콘텐츠간의 컨버전스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다. 그런건 아날로그적 사고로는 도저히 감지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새로운 정부 구상에 나쁜 의도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나라의 미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고민 속에서 나온 것임을 모르는바 아니다. 다만 그 속에는 무지(無知)가 있다. 디지털 사회의 미래는 디지털 사고를 하는 사람의 두뇌에 맡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반도를 흐르는 물길은 대규모 토목공사로 바꿀 수 있겠지만, 디지털 사회의 흐름은 바꿀 수 없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흐름을 거역하고 폭포를 거꾸로 헤엄치는 정부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상하 IT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