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가 우리 문화재 망친다
시민단체 "강 따라 형성된 한반도 역사, 대운하로 뒤엎나"
[프레시안 강이현/기자]
이명박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가 석기시대부터 내려온 수백~수천 개의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화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전국 26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경부운하 저지 국민행동'은 7일 서울 종로 환경운동연합 마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 운하는 역사 문화를 파괴하는 불도저 운하"라고 주장했다.
한반도운하 예정지 주변 지정문화재 72곳, 매장문화재 177곳
기자회견에 참석한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한반도는 강을 따라 선사시대부터 역사와 문화가 형성됐다"며 "강을 훼손하는 것이 곧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첫 번째 이유"라고 밝혔다.
지난 3일 문화재청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산하 한반도대운하 태스크포스(TF)에 한반도운하 예정지 주변의 지정문화재는 72곳, 매장문화재는 177곳에 이른다고 보고했다. 지정문화재는 한강과 낙동강 주변 반경 500m 이내의 지역을 조사한 것이며 매장문화재는 유역 반경 100m 이내 지역을 조사한 것이다.
이들 중 한강 유역에 위치한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사적 267호 암사동선사주거지와 사적 11호로 지정된 풍납토성이 있다.
또 국보 6호인 중원탑평리7층석탑, 사적 400호로 지정된 장미산성도 남한강 유역에 위치해 있으며 낙동강 유역에도 보물 350호의 도동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강을 이용한 역사…영향 받을 문화유적 수량 예측 불가"
그러나 문화재청이 보고한 문화재 이외에도 운하의 영향을 받는 문화재가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역사적으로 강이 중요한 물류 운송로이자 주요 교통로, 그리고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강 유역에 건설된 성곽과 진지, 사찰이 매우 많았다는 것이다.
황평우 위원장은 "이번 보고 내용을 한반도운하 전체의 문화유적이 아닌 한강, 낙동강 등 경부운하 주변에 있는 문화재 분포이며 실제 한반도운하 2100㎞에는 수천~수만의 문화유적이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또 황 위원장은 "정밀도가 낮은 기존 문화재 분포지도를 바탕으로 조사한 한계도 있다"며 "각 시군별로 조사한 이 지도는 지방자치단체가 개발에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해 축소 보고했을 수 있으며, 조사방식 지표에 대한 육안 조사였기 때문에 정확도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황 위원장은 "뿐만 아니라 실제 운하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터미널, 갑문, 수중보, 연결도로, 편의시설, 관광단지 등을 포함할 경우 문화유적 분포 반경 면적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분포지역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문화재 발굴 소요 예산만 수천 억 원"
문화재조사에 소요되는 예산과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예로 청계천 복원 사업의 경우 5.8㎞의 구간에 대한 문화재 지표조사 비용에 5000만 원이 사용됐다. 시굴조사와 유적이 있는 곳의 발굴비는 6~8억 원이 이상 소요됐다.
황평우 위원장은 "운하 추진 측 자료에 따르면 남한구간 운하는 총 2100㎞에 이른다"며 "산술적으로 따져도 발굴조사비만 최저 2300억 원 이상 소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의 둔치를 발굴하는 환경적 요인 때문에 기술적인 비용은 더욱 증가할 수 있다.
황평우 위원장은 "청계천 발굴 당시에도 많은 이들이 문화유적은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지만 실제로 교각, 엽전, 토기 등 조선시대 각종 문화재가 쏟아졌다"며 "한강과 낙동강을 포함해 우리나라 5대 강에 문화재가 분포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밝혔다.
또 그는 "2000여 명 남짓에 불과한 국내 문화재 조사인력 구조 속에서 대운하와 관련된 정밀 조사를 실시하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여기에 더해 운하 개발로 사라질 수 있는 강 주변 동식물과 지질구조에 대한 연구조사까지 합치면 대운하와 관련된 조사 영역은 고고학, 미술사학, 민속학, 동식물학, 건축학적인 조사로 대폭 확대된다.
황평우 위원장은 "이명박 당선인이나 이재오 의원, 한나라당 정권은 몇 만 년, 몇 천 년을 내려온 유적을 헐어내고 밀어낼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며 "한반도운하 계획은 전면 백지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화점 하나를 짓는 데도 환경영향평가에 1년 넘게 걸려"
안병옥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환경적 측면에서도 사전 환경성 검토,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며 내년 2월에 착공한다는 계획은 환경영향평가 자체를 생략하거나 기간을 단축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병옥 총장은 "백화점 하나를 짓는 데도 환경영향평가가 1년이 넘게 소요된다"며 "인수위의 계획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민주주의 위기 뿐만 아니라 환경 재앙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준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역시 "이명박 당선인은 '경제살리기'의 방법을 상당히 후진적인 방법으로 찾고 있다"며 "저급 노동자, 건설노동자를 키우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우리나라 정책이나 비전에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윤준하 대표는 "건설마피아와 직결된 그가 이런 태도를 취해도 되겠나"라며 "(한반도대운하 건설 강행은) 진시황제와 마찬가지로 시대착오적인 얘기"라고 질타했다.
강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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