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한반도 대운하

대운하, 여든에 이앓는 소리다

joyhome 2008. 2. 17. 09:37

[기고] 대운하, 여든에 이앓는 소리다 / 정윤재 (21)

 

운하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그래서 지난주말에는 온종일 남한강을 누볐다. 신륵사 앞 여강에서는 논병아리의 자멱질이 이뻤고, 흥원창 부근 물길에서는 왜가리와 고니의 멋들어진 패션쇼를 즐겼다.

 

동행했던 명예환경감시원들은 모두들 탄성으로 화답했고 운하하면 저 새들 다른 데로 다 날아가겠다고 걱정이었다.

 

최근 이명박 당선인은 “과욕부려 밀어붙이기는 없을 것”이라 했다.

또 당초 정부 주도로 추진하겠다던 영산강·금강운하도 경부운하처럼 민자로 건설하겠다고 했다.

 

겉보기에는 한발짝 물러선 것 같지만 반대여론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실무적인 준비는 착착 진행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국토자연을 “우선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파괴해도 일없던 개발시대를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 국민들은 국토자연의 보존과 알뜰한 관리가 높은 경쟁력의 원천이고 선진국다운 삶의 질의 조건임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친환경’을 내세우던 토목공사가 결국은 우리의 삶을 천박하게 만들었던 사례들을 수도 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우리라고 제대로 흐르는 강과 함께 살지 말란 법이 있느냐?”면서 운하 반대의견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강줄기는 화물이나 나르는 허접스런 ‘수로’가 아니고 127종이나 되는 토종물고기들의 고향이자 놀이터다. 특히 우리에게 있어 강은 소설 <태백산맥>, <변경>, <객주>, <한강> 속에서 숱한 이야기들이 잉태됐고 지금도 쌓여가고 있는 생생한 삶의 터전이다. 그리고 강변 구비구비마다 우리 각자의 아련한 추억과 싱그러운 낭만들이 그대로 포개지고 스며있는 향토문화사의 현장이다.

 

그러기에 사막 한가운데의 두바이프로젝트나 집중호우가 없어 하상계수가 낮은 유럽의 ‘라인 마인 도나우(RMD)운하’는 우리나라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없다. 더욱이 펑퍼짐한 유럽대륙과 달리 산과 들의 높낮이 차이가 큰 우리나라에 운하놓자는 말은 ‘여든에 이앓는 소리’다.

 

세계 어느 반도에도 물길이 남북 동서로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물길이 흐르고 있는 곳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운하는 강변을 중심으로 강바닥과 물한가운데 그리고 들과 산으로 이미 연결돼 있는 뭇생명들의 먹이사슬을 훼손하고 고즈넉한 자연경관을 망치는 돌이킬 수 없는 국토파괴행위다.

 

그런데 이명박 당선인은 엉뚱하게도 운하로 새 ‘물길’을 뚫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강과 낙동강의 물길은 이미 태고적부터 이미 그 자리에 만들어져 유유히 흐르면서 우리 삶을 이리저리 윤택하게 하고 우리 문화를 얼키설키 만들고 역사를 축적해 오고 있다.

 

따라서 자갈모래 다 파내고 옹벽을 내 운하를 설치한다는 것은 이미 형성돼 있는 풍성한 우리의 문화유산과 정서를 그대로 파괴하는 처사다. 이미 인심이 흐르고 작동하며 숱한 이야기들을 뿜어내고 있는 물길을 자르고 망치는 흉사다. 그 안에서 신나게 살고 있는 갈겨니, 누치, 각시붕어, 모래무치, 종개 같은 물고기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무모한 발상이다. 강바닥 자갈밭에 알을 낳는 날렵한 어름치, 송어, 산천어를 쫓아내고 큰 바윗돌 밑에 거꾸로 서서 알을 붙이는 꺽지를 죽이며 물위로 기세좋게 차오르는 ‘민물고기의 왕’ 가물치의 기를 꺾는 일이다.

 

그나마 향토문화와 자연생태가 남아 있는 강변까지 정말 정신사납고 번잡하게 만들어 우리나라 전체를 ‘쉴 만한 물가’도 제대로 없는 삭막한 땅으로 전락시키는 일이다. 이제 우리가 지금 할 일은 개발열풍에 쫓기고 외눈박이 합리주의에 찢기어 간신히 생존해 있는 금수강산을 더는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다듬고 북돋아 우리 후손들이 맑은 강물속에서 마음껏 치닫고 솟아오르는 가물치처럼 활기찬 생활을 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 당선인은 “운하를 해도 물고기들이 살 수 있다”고 했지만, 횟집 수조 안에서 몸서리치고 있는 광어가 살아 있다고 그게 어디 사는 것인가? 죽지못해 연명하는 것 아닌가? 과거엔 일제가 역사파괴로 민족의 생명을 끊으려 했는데 이젠 우리 스스로 국토마저 파괴하여 우리들의 숨통을 조이고 민족의 미래를 닫아야 할 차례란 말인가?

 

지금까지 여러 대선후보들이 그래왔듯, 이 당선인도 ‘한반도 대운하’공약을 한바탕의 선거용으로 잘 활용했다. 또 제대로 된 설계도면 하나 제시하지 않고도 대선에서 승리까지 했으니, 그 효용가치는 충분히 발휘되었다 할 것이다. 정 하려면, 이 당선인과 그 참모들은 각자의 재산들을 모두 담보잡혀 놓고 해야 한다. 나중에 문제생기면 ‘공적 자금 투입’ 운운하며 내가 낸 세금 다 낭비할 것 아닌가? 그러니 이제 이 문제로 온 나라가 온통 들쑤셔지고 분열되는 사태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지혜롭다.

 

이 당선인은 “이미 공약으로 내세운 거니까 무조건 해야 한다는 자세는 안된다”고 말했던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의 충정을 받아들이기 바란다. “싸움에 이겨 이미 공이 높았으니(戰勝功旣高),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知足願云止)했던 을지문덕 장군의 주문에 따라 이제라도 ‘대운하’공약을 거둬 들인다면, 이는 통합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또 투박하고 저돌적인 그의 이미지는 그가 바라는대로 세련되고 현실감각있는 최고경영자(CEO) 이미지로 바뀔 것이고, 인기도 더 솟을 것이다. 자신의 원칙으로 지지층을 유지, 확대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한편, 다른 정당이나 시민들의 비판과 반대여론을 경청하고 또 이를 적절하게 수용하며 덕을 넓혀가는 것이 바로 통합이요 실용이다. 정치적 반대세력을 ‘적’으로 몰아세우고, 비판적 제안을 무조건 배타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냉전과 독재시대의 ‘통합 조작기술’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가 ‘대운하’ 건설을 고집한다면, 이명박 정부와 참여기업들은 간디의 소금행진 때와 같은 불복종 저항운동과 소송에 직면할 것이다.

 

역사상 지금처럼 우리 국민들의 환경의식과 역사의식이 강렬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고, 이제껏 누구하나 “운하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친 적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변화가 빠르고 다양한 21세기의 한국에는 “무조건 자신의 신념대로 밀고 나가기보다 한번쯤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유연한”, 정말 책임감 있는 정치지도자가 필요하다.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이란 여수박람회의 주제를 칭찬했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의 주문이다.